외국어 촌평/다국어 토막글

[한중일 비교_No4] 나라별 사귀는 친구 표현

computer97 2023. 1. 29. 18:08

일반적으로 친구는 2가지 범주입니다. 보통 '친구'랑 (진지하게) 사귀는 '친구'입니다. 근데 문화권을 초월해서 후자 표현방식이 미일중국 모두 동일합니다(따지고 보면 신기합니다. 4개나라의 언어습관을 뜯어보면 이렇게 일치하는 경우가 드뭄)

 

영어권에선 이성친구도 그냥 friend라고 부릅니다만 앞에 boy나 girl같이 성을 구분하는 표현을 추가해서 boyfriend/girlfriend라고 하면 사귀는 친구가 되는데 이건 한국/중국도 동일하지요. 한국에선 보통 '친구'에다가 '남자'/'여자'를 각각 추가해서 남자/여자친구라고 하면 사귀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중국어에서도 보통 친구 朋友(펑요우)에다가 男/女를 각각 추가하면 , 男朋友(난펑요우)는 남자친구, 女朋友(뉘펑요우)는 여자친구를 의미합니다. 한중미 3국은 이렇게 보통 '친구'라는 표현에다가 성별표현을 추가해서 사귀는 친구를 표현합니다.

 

근데 일본의 표현방식은 이와는 다릅니다. 일본에서 친구는 ともだち(友達, 토모다찌)라고 부르는데 다만 사귀는 친구를 표현할땐 이 표현을 재활용않고 남자친구는 かれし(彼氏,카레씨) 여자친구는 かのじょ(彼女,카노죠)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호칭에도 성별을 구분하는 표현이 들어가긴 합니다. 우리말 호칭으로도 많이 쓰이는 氏(씨)는 우리나라에선 남녀 모두에게 폭넒게 쓰이나 일본에서는 주로 남자에게 씁니다. 氏는 가문도 의미하는데(바로 씨족(氏族)이 가문임), 일본에서 가문은 남성이 대표하거든요. 여자친구인 かのじょ(彼女,카노죠)에도 여성을 나타내는 女가 들어가지요.

 

근데 왜 일본만 이렇게 표현할까요? 제 짐작에 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문화적 배경이 존재합니다. 일본은 심지어 사랑고백조차도 한중일미중 유일하게 완곡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저의 '[한중일 비교_No2] 한중일미 나라별로 살짝 다른 고백대사' 참고), 일본에서 사귀는 친구를 나타내는 카레씨와 카노죠는 원래 각각 '그 남자', '그 여자'를 의미하기에 이 표현은 남자/여자친구를 엄청 에둘러 표현한 셈이지요. 따지고 보면 일본어에서 엄청 발달한 존댓말과 수동어법도 완곡한 어법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일본어가 이렇게 된 건 일본인의 민족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일본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강력한 봉건제도에 따른 엄격한 계급사회는 존댓말을 발전시킨 동인이 아니었을까요?